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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여행]  교토, 나라, 오사카 2박3일
[힐링여행] 교토, 나라, 오사카 2박3일
[정치닷컴/휴먼리더스=장팔현 논설기자] 지난 2월에 지인이 3월 중순 경 가까운 일본이라도 갔다 오자하여 일을 꾸미게 됐다. 한 달여 앞서 비행기 표와 숙소 및 렌터카까지 예약하기로 했다. 여행지는 필자가 유학 시 8인승 승합차로 관광가이드로 일했던 지역이라 지리와 운전도 자신 있었다. 교토에서는 6년여, 오사카에서 3년여 살던 기억을 더듬으며 자유여행 계획을 추진했다. [사진=장팔현 논설기자] 스카이스캐너 같은 앱을 통해 항공권과 호텔을 알아보니 한 여행사에 연결됐다. 그곳에 입금하고 일처리 하면 된다. 아울러 렌터카는 여행사에 소개비 4만원 내고 알아보거나 일본어 알면 일본 렌터카 회사 사이트에 들어가 직접 예약해도 된다. 김해공항에서 오사카 칸사이공항으로 칸사이공항에서 내려 바로 렌터카 회사로 향했다. 8인승 토요타 왜건이다. 일정은 나라부터 관광하고 다음날 교토, 마지막 날 오사카를 관광하기로 했다. 우선 공항에서 곧바로 나라의 법륭사(法隆寺)로 향했다. 이곳은 607년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서원(西院)은 현존하는 목조 건물로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특히 백제관음상은 그 수려한 모습에 감탄할 정도다. 아쉽게도 사찰 건축물은 보수 중이었다. 참고로 입장료는 1,500엔으로 다른 곳보다 비쌌다. 아스카시대의 사찰 대부분은 백제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건축양식으로 오사카의 사천왕사도 그렇다. 법륭사는 일본의 아스카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 양식이다. 두 사찰 모두 성덕태자의 명으로 지어졌다. [사진=킨카꾸지] 다음으로는 나라현 텐리시(天理市)에 소재한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을 찾았다. 칠지도가 모셔진 곳으로 역사가 유구한 곳이다. 경내에서 보게 된 아름드리 삼나무에서도 그 역사의 유구함을 유추 해 볼 수 있을 정도다. 이어서 사슴공원으로 유명한 토다이지(東大寺)로 향했다. 이 절은 일본의 45대 천황인 쇼무(聖武, 701~756) 때 지어진 사찰이다. 그는 당시 각종 자연재해와 천연두 같은 역병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지자 741년 동대사의 전신인 곤쇼지(金鍾寺) 터에 본 사찰을 짓기로 하였고, 743년에는 대불의 주조를 발원하게 된다. 이때 거대한 불상에 도금할 막대한 금이 필요했다. 이를 해결한 이는 백제 왕족으로 알려진 경복(敬福)이란 인물이다. 그가 대불 도금에 필요한 황금 900량을 조달하였는데, 그의 조부가 바로 백제 의자왕의 아들로 백제 멸망 후 일본으로 건너간 선광(善光)으로, 일본에서 '백제왕(百濟王)' 씨의 시조가 되었다. 하여튼 많은 외국 관광객이 나라지역 유명 사찰에 몰려왔다. 특히 중국어가 많이 들려왔다. 이러한 일은 교토의 키요미즈데라(淸水寺)와 킨카쿠지(金閣寺)에서도 다름없이 이어졌다. 정말 제주도를 찾던 중국인 관광객이 일본으로 전부 발길을 돌린 것 같다. 저녁에 히가시미쿠니(東三國)역 근처의 호텔에 도착 해 보니 일반 비즈니스호텔보다는 좀 넓어 좋았다. 이튿날 아침은 호텔식당에서 먹었는데 뷔페식으로 잘 나온다. 이틀째는 천년 동안 일본의 수도요, 일본인들 마음의 고향이라는 교토(京都)다. 이곳은 필자가 다년 간 살았던 곳으로 더욱 정이 간다. 예의 빼먹을 수 없는 키요미즈데라(淸水寺)를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봄철이라 그런지 엄청난 인파가 밀린다. 이곳은 필자가 살았던 곳에서 가까워 자주 들렸던 곳인데, 절까지 올라가는 좁은 길목이 인산인해다. 중국인, 한국인, 동남아시아인, 서양인 등 국제도시에 온 것 같다. 물론 요즘은 한국인보다 중국인이 더 많아 보인다. [사진=귀무덤] 우리 일행은 키요미즈데라에 들리기 전 교토박물관 뒤편에 있으나 관광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귀무덤(코무덤: 임진왜란 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조선인의 코와 귀를 베어 염장해서 가져가 만든 무덤)에 들렸다. 갈 때 이미 소주 한 병을 사갔기에 일동은 묵념한 후 이국땅에 잠든 한 맺힌 영혼들 앞에 소주잔을 부으며, 다시 한 번 토요토미의 잔인성에 이를 갈았다. 반면에 귀무덤을 전쟁의 전리품으로 여기는지 맞은편에는 토요토미를 위한 토요쿠니신사(豊國神社)가 있는데, 역사를 모르는 일부 한국 사람들은 그곳에 들려 소원성취를 바라며, 기도를 하는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하여튼 우리 일행은 점심으로 일본 라면을 맛보고 곧바로 숲속 쿠라마 노천온천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출발 할 때는 이미 보슬비가 슬슬 봄을 시샘하고 있었다. 온천 주변은 깊은 산속으로 늘씬한 삼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15년 전 겨울에 왔을 때는 눈 구경하며 캔 맥주 마시던 목가적인 풍경이 이번엔 빗물로 바뀌었을 뿐이다. 목욕재계 후 킨카쿠지(金閣寺)를 향했다. 대학원 때 늘 지나던 곳에 유명 사찰이 있어 종종 들렸었다. 이곳도 인산인해였다. 비가 오는데도 아랑곳 않고 많은 관광객이 찾았다. [사진=오사카성] 마지막 날엔 오사카성을 돌아본 후 번화가인 남바의 돈키호테에 들려 필요한 쇼핑을 끝내고 여유 있게 칸사이공항으로 향했다. 여유롭고 자유롭게 렌터카로 나라, 교토, 오사카 2박3일 싼 가격에 잘 다녀왔다. 8인승 토요타 승합차를 3일간 빌리는 데는 43,000엔이 들었다. 하이패스 장착하고 가솔린은 돌아올 때 가득 채워오거나 돈으로 계산하면 된다. 3일간 전부(고속도로비, 주차비, 가솔린 비용 등) 계산 해 보니 1일 1인당 10만원 꼴 들었다. 3일간 여행 경비를 합산 해보니 1인당 총액 60만 원대 정도 들이고 자유롭게 여행을 마쳤다. 비행티켓 예약 시 유의할 점은 영어 철자 하나 틀리면 올바로 수정하는데 수수료 3만원을 더 내야하고, 다른 사람으로 오인될 정도로 틀리면 비행기 예약을 물리고, 다시 사야 하기에 10만 원이 추가로 든다는 점이다. 때문에 신경 써서 철자를 확인하고 여권의 만료기한이 6개월 이상 남았는지 잘 봐야한다. 또한 갈 때 올 때 짐은 몇 KG까지 무료인지, 초과 시 얼마를 더 내야하는지도 자세히 확인해야 한다. 대개 20KG까지는 4만원 더 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계약 시 철저히 확인하고 체크해야 한다. 앞으로 중국이나 다른 나라 갈 때도 맘 맞는 일행과 자유여행으로 여유롭게 갈 계획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한반도
남북 정상회담과 한반도
[정치닷컴=장팔현] 요즘 세계 뉴스의 중심지는 단연 한반도다. 한반도는 산자수려한 금수강산이요, 기가 센 곳이다. 아울러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첨예하게 대립, 충돌하는 곳이기에 늘 시끄러웠고 6,25라는 동족상잔마저 겪어야했다. 우리는 두 세력 간의 균형을 잘 잡아주어야 한다. 즉, 우리가 주인이 되어 밸런스 오브 파워(Balance of Power)를 잡아야 한반도가 안전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운전석에 앉아 주변 4강을 조율 해야지 박근혜 정권 때처럼 극과 극을 오가는 ‘극 반전 외교’를 하다가는 엄청난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 실제로 박 정권은 초기 친중 정책을 펴 중국 측으로부터는 환대를 받았다. 특히 2015년 9월2일 중국 전승절 때의 방중은 미, 일의 염려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참여하여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박정권은 귀국 후 오래지 않아 이번에는 일전하여 친미 중심외교로 방향을 틀었다. 자연적으로 미국의 압력에 의해 2016년 1월에 한일 위안부 합의가 급히 이루어졌고, 이어 11월에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는 해양세력 간의 군사동맹으로 한반도 전쟁 시 한미일이 하나로 움직인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 일본과의 위안부 문제 합의와 군사정보보호협정은 국민감정과는 정반대로 미국의 국익 도모 하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후 이의 연장선상에 우여곡절 끝에 성주군에 사드가 배치되었고, 화가 난 중국에 의한 보복으로 우리나라는 지금껏 경제적으로 완전히 회복이 안 되고 있다. 게다가 개성공단까지 폐쇄하고 철수시켰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외교로 말미암아 경제적 손실을 본 천추의 한이런가? 이처럼 남북 화해와 평화의 주역인 우리가 운전석에 앉지 못하고 조수석도 아닌 뒷좌석에 방치될 때 주변 강대국은 6.25 때처럼 우리민족을 안하무인 식으로 대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9년간 긴 빙하기를 끝내고 남북이 대화와 화해 모드로 접어들기까지에는 정말 숱한 전쟁 위험이 고조되었다. 이처럼 긴장된 상태에서 2017년도는 더욱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다. 그 한해만 해도 북한에서 쏜 미사일이 동해 상공에 날아다니고 핵실험이 여러 번 이루어지는 등 이는 곧 일본과 미국의 거친 항의와 유엔에서의 지독한 제재가 뒤따르는 원인제공이 되었다. 자칫 일촉즉발의 전쟁 위험성마저 나돌던 상황이었다. 이처럼 위험했던 한반도에 올 초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로부터 남북대화와 평화가 가능할 것이란 일말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반전이 이루어졌다. 이후 대화 분위기는 곧 행동으로 옮겨졌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여하면서 남북의 화해 분위기는 실제 행동으로 점화되었다. 이때 백두혈통의 실세인 김여정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이 내려오면서 한반도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현 정부의 노력도 엄청 크다 할 것이다. 이러한 화해분위기를 타고 드디어 지난 4월27일 남북정상이 판문점에서 회담을 가진 뒤 남북한 주민들은 물론 세계인들의 눈과 귀는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 그만큼 남북정상회담과 북·중 정상회담 및 곧 개최할 북·미 간 정상회담이 북한의 핵무기 폐기와 이후 펼쳐질 종전선언과 나아가 평화협정에 이를 것이란 예측 속에 남북한 주민 대다수는 기대감과 환희에 들 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5월8일에도 재차 다롄에서 만나 회담을 가졌다. 그만큼 한반도의 해빙 무드에 당사자인 남북한은 물론 미국, 중국, 일본마저 자국의 이익을 따져가며 저울질 하고 있음이다. 다음날인 9일에도 일본에서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리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미국과 북한의 기 싸움은 치열하다. 북한은 미국의 무리한 요구가 이어지자 즉시 시 주석과의 회담을 갖는 등 적극 대응했다.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도 했다. 북미의 치열한 공방전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평양 재차방문으로 합의점을 도출, 한국계 미국인 3명의 석방되었고, 싱가포르에서 6월12일 회담이 있을 것이라고 귀국 당일 발표하게 되었다. 어찌됐든 조율이 잘 된 덕분이다. 하여튼 회담이 결정되기까지 상호견제는 북미 간은 물론 북일 간에도 험한 말들이 오갔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받아들이기 힘든 ‘시브이아이디’(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요구했었다. 북한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유연한 자세로 양보하는데도 너무 과한 요구를 하면 회담이 성사되기 힘들다. 잘 진행되던 북미 간 물밑 대화는 뒤늦게 미국 측의 지나친 요구로 판이 깨질 뻔 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자구책으로 완전히 다시 친중 국가로 돌아 설 수밖에 없다. 북한이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시점에서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다. 지난 5월3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약칭으로 ‘PVID’를 얘기했는데, 이는 ‘영구적이고(permanent), 검증가능하며(verifiable), 불가역적(irreversible)인 핵 폐기(dismantling)’라는 가장 강력한 요구를 해왔다. 이에 우리 외교부는 ‘CVID’와는 용어상 차이는 있지만 뜻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북한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다만,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를 원하고 중국도 지지하는데 반해 미국은 일괄처리 방식인 원-샷 비핵화(즉 핵사찰의 시작과 동시에 비핵화를 공식화 하자는 의견)를 주장하며 충돌하였으나 북한이 타협책으로 내건 ‘신뢰 구축 후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란 제안이 물밑 협상에서 접점을 찾은 것 같다. 남북은 친미국가로 가야! 치열한 수 싸움은 지금도 계속 중이다. 아울러 잘 진행됐던 북미 양국의 물밑 대화가 한때 삐걱거린 데에는 일본이 있었지 않나 추측된다. 북한 입장에서는 핵 폐기까지 선언하고 검증도 받겠다는데 이에 한 술 더 떠 미국은 생화학 무기와 중거리 미사일 등 다른 것도 폐기하라고 요구했는데, 이는 아무래도 아베-트럼프 회담 시 일본 측의 요구사항이 더해진 느낌이다. 북한으로선 아무리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기로서니 생사여탈권까지 미국이 가지려한다는 느낌이 들어 급거 다롄으로 시진핑 주석을 만나러 간 것일 게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이어지는 남북미 간에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나라는 일본 같다. 일본은 미국에 대하여 북한과 회담 시 일본인 납치 문제 및 생화학 무기 폐기는 물론 중거리 미사일 폐기 등 북한을 자극하며 발가벗기길 바라고 있다. 일본은 무리한 요구로 회담이 깨지길 바라는 것 같다. 그러니 북한이 화를 내는 것이다. 일본과 같은 지나친 요구로는 성공적인 회담이 이루어질 수 없다. 회담은 상대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에서 서로 주고받아야지 일방적인 요구는 파탄을 불러온다. 일본은 한반도에 화해 분위기가 일고 남북이 통일 되는 걸 반대하는지 사사건건 과한 요구를 하고 있다. 특히 아베수상은 북일 수교를 원한다고 얘기하면서 언제나 일본인 납치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이점을 먼저 알아야한다. 일본은 일제시대 북한지역에 대한 식민지배와 종군위안부 문제 등에 대하여 먼저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 물론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도 인권문제로 중요하다. 그러나 일에는 순서와 사안의 경중이 있다. 시대적으로도 일본은 일제시대 북한 주민들에게 행한 피해에 대하여 진솔한 사과 및 배상 후 북일 수교가 순서이다. 이후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하여 북한이 풀 문제이다. 북일 수교 후 납치 문제를 푸는 게 순서라 생각된다. 어찌되었건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당사자인 남과 북이 주체가 되고, 주변 강대국들이 도와주어야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본은 남북통일을 원하지 않는 분위기이고, 중국 또한 속내는 남북통일 후 필연적으로 한국, 미국, 일본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해양세력과 두만강,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접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조선시대처럼 북한만이라도 속국 내지는 직접 통치하고픈 것이 속내일 것이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엔 최소한 옛날 중국과 고조선 사이에 완충지대로 존치했던 상하장(上下障)처럼 현재의 북한 지역을 해양세력에 대한 방패막이로 계속 두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 영토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라도 통치 내지는 영향권 내에 두고 싶어 함에는 이의가 없어 보인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토의 침해나 직접 통치는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옛날 외교 방책에도 근공원교(近攻遠交)란 말이 있다. 가까운 나라는 견제하고 먼 나라와는 수교하라는 말이다. 때문에 남북이 평화체제 구축 후 통일에 이르기까지에는 남북 모두 친미국가로 가야한다. 그 길만이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번영해 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물밑 대화가 계속 잘 진행되어 북미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남북통일이라는 큰 선물이 우리민족에게 주어지고, 그 길이 세계평화와 인류애의 든든한 초석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움의 땅 제주도-논설위원 기행-
그리움의 땅 제주도-논설위원 기행-
[정치닷컴=장팔현 논설위원] 있을 때보다 떠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섬이 있다. 바로 제주도다, 제주도는 아름다운 환상의 섬, 그 자체라는데 찬성하지 않을 수 없다. 멋진 섬이다. 필자는 그동안 제주도를 네 차례 갔다 왔지만 대부분 한정된 지역을 둘러보고 급히 돌아왔을 뿐이었다. 이번처럼 제주 해안가를 일주한 적은 없었다. 지난해 여름 8월21일에 고흥 녹동 항에서 차를 배에 싣고 들어가 9월28일 완도 항으로 나왔으니, 한 달 이상 체재하면서 제주 바닷가를 일주했던 셈이다. 처음 도착해서는 제주항 바닷가로부터 애월 쪽을 둘러보고 안덕면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인과 함께 일하면서 일요일만 되면 대포 항으로 강정 해안가로 중문, 서귀포 올레 길로 싸돌아다니기 바빴다. 도착 후 세 번째 일요일엔 태풍으로 배가 뜨지 않아 마라도행이 좌절됐다. 때문에 송악산 주변 바다의 집어삼킬 듯 한 분노의 거품질만 보고 모슬포로 해서 한림 쪽으로 차를 몰았다. 수월봉 해변가의 환상적인 수 억 겹 세월의 아픔을 자랑하는 지층을 경이의 시선으로 둘러보고 차귀도와 와도를 곁눈질 하면서 바다로 막힌 곳을 돌아 한림 쪽으로 갔다. 비양도가 마주보이는 금능 해변으로 차를 몰았다. 바다가 잔잔해진 네 번째 주 일요일 마침내 마라도와 가파도를 가 볼 수 있었다. 예약된(인터넷 예약이 안 돼 직접 가거나 아니면 전화로) 첫배(오전 9시 50분 출항)를 타기 위해 모슬포 항으로 차를 몰았다. 물론 송악산 쪽에서도 마라도 가는 배편이 있다. 마라도나 가파도나 섬이 작아 차는 실어주지 않지만 40분 전에는 가야한다. 하루에 5회 왕복하는데 마지막 출항 배는 마라도에서 그날 나올 수 없다. 그런데 너무 시간이 짧다. 마라도 체재 시간이 겨우 1시간 30분 정도로 유명한 짜장 먹고 모둠회 한 접시 먹고 나면 뛰어서 항구로 와야 할 정도다. 하루 정도 묵으면 좋을 것 같다. 식당도 10여 곳이 넘고 민박집도 꽤 된다. 하루 정도 머물 계획하고 예약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 마라도와 항구 입구 마라도 갔다 온 후 오후엔 가파도로 향했다. 가파도는 모슬포 항에서 10여분이면 닿을 수 있다. 마라도보단 두 배 정도 크다. 땅은 마라도보다 큰데 개발이 안 됐다. 청보리 축제가 있을 정도로 들판은 꽤 넓어 보였다. 반면에 식당은 섬 전체에 서너 곳에 불과했고 민박도 마라도에 비하면 너무나 없을 정도다. 하여튼 주어진 시간은 마라도보다 길고 섬은 크기에 5천원 주고 자전거를 타고 일주하면 딱 좋다. 아울러 북쪽을 바라보면 송악산과 산방산이 우뚝 솟아 보인다. 날이 맑으면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 송악산은 동쪽으로 머리를 쳐든 악어 모습으로 보이고, 높이 솟은 산방산은 투구 모습으로 비친다. 아울러 모슬포는 큰 도시처럼 비친다. 마치 겹겹이 수묵화를 그린 것처럼 신비롭고 멋진 풍경이다. 장가계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2] 가파도에서 바라본 송악산 제주를 떠나올 때는 다시 중문과 서귀포를 거쳐 표선으로 해서 성산일출봉까지 갔다. 서귀포항은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항구 바로 옆 바다엔 해녀들 서너 명이 물질을 하고 있었는데 신선한 광경이었다. 시내 쪽으론 정방폭포가 힘찬 물줄기를 뿜어대는 것도 장관이다. 드디어 성산일출봉에 닿으니, 평일인데도 엄청난 인파가 몰려 정상을 오르고 있었다. 사진으로 봐온 움푹 파인 펀치 볼 형태의 정상 부분이 멋있어 보여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다음 기회로 미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도로를 달려 월정리 해안가 둘러보며 제주시로 돌아와 군대동기와 회포를 풀고 다음날 아침 배로 돌아 왔다. 월정리 해안가는 마치 큰 도시를 한 움큼 떼어다 놓은 것처럼 카페와 식당이 줄지어 늘어선 도회지 그 자체 같았다. 그런데 제주도는 생각보다 크다. 서울 면적의(605.20㎢)의 3배(1,848.4㎢)를 가볍게 넘는다. 2017년 8월 기준 제주도 인구는 내국인 651,888명 외국인 21,155명으로 70만 명에 가깝다. 좁은 땅에 1천만 명 이상이 사는 서울에 비하면 제주도는 아직은 좁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제주 갔다 온 지도 3개월이 넘었다. 그런데 지금도 꿈을 꾸는 것처럼 자꾸 손짓 한다. 다시 오라고......, 이밖에 생각나는 점은 모슬포의 북한 식당에서 먹어본 평양비빔냉면과 만두는 맛있었다. 물냉면은 슴슴했지만 비빔냉면은 입맛에 딱 맞았다. 남한 사람들은 조미료에 대부분 중독 돼서인지 평양 물냉면이 처음엔 입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차차 슴슴한 맛에 필자도 중독되리라 본다. [#3] 대평리 소재 박수기정 또한 안덕면 감산리에 있는 성 박물관 넘어 대평리에서의 물 회도 맛이 좋았고, ‘절벽 샘물이 솟는 곳’이라는 박수기정도 절경이었다. 다시 가고픈 마을이다. 대평리에서 감산리 쪽으로 나오는 중간에 차로 9부능선까지 올라갈 수 있는 군산에서의 풍경 또한 기억에 남는다. 차를 세워두고 정상을 향하는 도중 많은 약초와 무덤을 볼 수 있는데 육지와는 사뭇 다르다. 특이하게 무덤 주위를 돌담으로 장방형이나 네모나게 쌓아 두르는 전통이 있는데, 이를 ‘산담’이라고 한다. 산담은 소와 말을 방목하기 때문에 이들이 묘지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잡목을 없애기 위해서 불을 놓으면 묘지가 불에 타지 않도록 하는 조치라 한다. 아울러 여름철 홍수로 인해 묘지가 떠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한 나름 과학적인 울타리라고 할 수 있다. 평지에서는 밭 한가운데나 밭가에 묘지를 두는 곳이 많았다. 산에 가도 듬성듬성 산담이 보였는데 돌담이 높을수록 잘 사는 집이란다. 하여튼 군산에서 바라본 박수기정이 있는 대평리 해안가나 산방산 쪽이나 국제영어학교 쪽 등 360도를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강정해안 길 따라 올레길7,8코스도 아름답다. 올레길 주변에는 대개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식당도 붙어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어촌마을에서 운영한다. 숙박료는 1박 2만5천 원 선이었다. 특히 강정 해안가의 썩은 섬(서건도)에 대한 유래와 실제 섬의 토질이 썩은 흙 같다는 점도 흥미를 더한다. 모슬포에서 한림 쪽으로 가다 보면 신도리 해안가를 지나 제주시 고산면에 닿는다. 차귀도로 알려진 곳이다. 차귀도와 와도가 바라보이는 수월봉 쪽에 수십억 년 전의 기억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생의 다양한 지층의 속살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져있다. 정말 비경이 아니라 할 수 없다. [#4] 차귀도 해변가 또한 한림읍의 금능 해안가에는 9월 중순인데도 해수욕장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비양도가 마주한 바닷가에 뒤늦게 몰려와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부터 마치 세 떼처럼 하늘을 나르고 있는 모습이 시선을 잡아끈다. 페러세일링을 즐기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광경이 눈에 선하다. [#5] 페러세일링을 즐기는 사람들 환상의 섬 제주는 우리에게 가깝고도 잘 모르는 곳이다. 관광도 좋고 힐링도 권장해야할 일이지만, 언어, 생활, 풍습 등 문화인류학적으로 연구해야 할 부분이 무궁무진한 제주도다. 매력덩어리의 섬, 더욱 가까이 하고픈 제주도다. 언제나 그립고 갔다 오면 더욱 추억 가득한 제주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