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닷컴=장팔현 논설위원]
있을 때보다 떠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섬이 있다. 바로 제주도다,
제주도는 아름다운 환상의 섬, 그 자체라는데 찬성하지 않을 수 없다. 멋진 섬이다.
필자는 그동안 제주도를 네 차례 갔다 왔지만 대부분 한정된 지역을 둘러보고 급히 돌아왔을 뿐이었다. 이번처럼 제주 해안가를 일주한 적은 없었다.
지난해 여름 8월21일에 고흥 녹동 항에서 차를 배에 싣고 들어가 9월28일 완도 항으로 나왔으니, 한 달 이상 체재하면서 제주 바닷가를 일주했던 셈이다. 처음 도착해서는 제주항 바닷가로부터 애월 쪽을 둘러보고 안덕면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인과 함께 일하면서 일요일만 되면 대포 항으로 강정 해안가로 중문, 서귀포 올레 길로 싸돌아다니기 바빴다.
도착 후 세 번째 일요일엔 태풍으로 배가 뜨지 않아 마라도행이 좌절됐다. 때문에 송악산 주변 바다의 집어삼킬 듯 한 분노의 거품질만 보고 모슬포로 해서 한림 쪽으로 차를 몰았다. 수월봉 해변가의 환상적인 수 억 겹 세월의 아픔을 자랑하는 지층을 경이의 시선으로 둘러보고 차귀도와 와도를 곁눈질 하면서 바다로 막힌 곳을 돌아 한림 쪽으로 갔다. 비양도가 마주보이는 금능 해변으로 차를 몰았다.
바다가 잔잔해진 네 번째 주 일요일 마침내 마라도와 가파도를 가 볼 수 있었다. 예약된(인터넷 예약이 안 돼 직접 가거나 아니면 전화로) 첫배(오전 9시 50분 출항)를 타기 위해 모슬포 항으로 차를 몰았다. 물론 송악산 쪽에서도 마라도 가는 배편이 있다.
마라도나 가파도나 섬이 작아 차는 실어주지 않지만 40분 전에는 가야한다. 하루에 5회 왕복하는데 마지막 출항 배는 마라도에서 그날 나올 수 없다. 그런데 너무 시간이 짧다. 마라도 체재 시간이 겨우 1시간 30분 정도로 유명한 짜장 먹고 모둠회 한 접시 먹고 나면 뛰어서 항구로 와야 할 정도다. 하루 정도 묵으면 좋을 것 같다. 식당도 10여 곳이 넘고 민박집도 꽤 된다. 하루 정도 머물 계획하고 예약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 마라도와 항구 입구
마라도 갔다 온 후 오후엔 가파도로 향했다. 가파도는 모슬포 항에서 10여분이면 닿을 수 있다. 마라도보단 두 배 정도 크다. 땅은 마라도보다 큰데 개발이 안 됐다. 청보리 축제가 있을 정도로 들판은 꽤 넓어 보였다. 반면에 식당은 섬 전체에 서너 곳에 불과했고 민박도 마라도에 비하면 너무나 없을 정도다. 하여튼 주어진 시간은 마라도보다 길고 섬은 크기에 5천원 주고 자전거를 타고 일주하면 딱 좋다. 아울러 북쪽을 바라보면 송악산과 산방산이 우뚝 솟아 보인다. 날이 맑으면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 송악산은 동쪽으로 머리를 쳐든 악어 모습으로 보이고, 높이 솟은 산방산은 투구 모습으로 비친다. 아울러 모슬포는 큰 도시처럼 비친다. 마치 겹겹이 수묵화를 그린 것처럼 신비롭고 멋진 풍경이다. 장가계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2] 가파도에서 바라본 송악산
제주를 떠나올 때는 다시 중문과 서귀포를 거쳐 표선으로 해서 성산일출봉까지 갔다. 서귀포항은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항구 바로 옆 바다엔 해녀들 서너 명이 물질을 하고 있었는데 신선한 광경이었다. 시내 쪽으론 정방폭포가 힘찬 물줄기를 뿜어대는 것도 장관이다. 드디어 성산일출봉에 닿으니, 평일인데도 엄청난 인파가 몰려 정상을 오르고 있었다.
사진으로 봐온 움푹 파인 펀치 볼 형태의 정상 부분이 멋있어 보여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다음 기회로 미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도로를 달려 월정리 해안가 둘러보며 제주시로 돌아와 군대동기와 회포를 풀고 다음날 아침 배로 돌아 왔다. 월정리 해안가는 마치 큰 도시를 한 움큼 떼어다 놓은 것처럼 카페와 식당이 줄지어 늘어선 도회지 그 자체 같았다.
그런데 제주도는 생각보다 크다. 서울 면적의(605.20㎢)의 3배(1,848.4㎢)를 가볍게 넘는다. 2017년 8월 기준 제주도 인구는 내국인 651,888명 외국인 21,155명으로 70만 명에 가깝다. 좁은 땅에 1천만 명 이상이 사는 서울에 비하면 제주도는 아직은 좁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제주 갔다 온 지도 3개월이 넘었다. 그런데 지금도 꿈을 꾸는 것처럼 자꾸 손짓 한다. 다시 오라고......,
이밖에 생각나는 점은 모슬포의 북한 식당에서 먹어본 평양비빔냉면과 만두는 맛있었다. 물냉면은 슴슴했지만 비빔냉면은 입맛에 딱 맞았다. 남한 사람들은 조미료에 대부분 중독 돼서인지 평양 물냉면이 처음엔 입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차차 슴슴한 맛에 필자도 중독되리라 본다.
[#3] 대평리 소재 박수기정
또한 안덕면 감산리에 있는 성 박물관 넘어 대평리에서의 물 회도 맛이 좋았고, ‘절벽 샘물이 솟는 곳’이라는 박수기정도 절경이었다. 다시 가고픈 마을이다. 대평리에서 감산리 쪽으로 나오는 중간에 차로 9부능선까지 올라갈 수 있는 군산에서의 풍경 또한 기억에 남는다. 차를 세워두고 정상을 향하는 도중 많은 약초와 무덤을 볼 수 있는데 육지와는 사뭇 다르다. 특이하게 무덤 주위를 돌담으로 장방형이나 네모나게 쌓아 두르는 전통이 있는데, 이를 ‘산담’이라고 한다.
산담은 소와 말을 방목하기 때문에 이들이 묘지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잡목을 없애기 위해서 불을 놓으면 묘지가 불에 타지 않도록 하는 조치라 한다. 아울러 여름철 홍수로 인해 묘지가 떠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한 나름 과학적인 울타리라고 할 수 있다. 평지에서는 밭 한가운데나 밭가에 묘지를 두는 곳이 많았다. 산에 가도 듬성듬성 산담이 보였는데 돌담이 높을수록 잘 사는 집이란다. 하여튼 군산에서 바라본 박수기정이 있는 대평리 해안가나 산방산 쪽이나 국제영어학교 쪽 등 360도를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강정해안 길 따라 올레길7,8코스도 아름답다. 올레길 주변에는 대개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식당도 붙어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어촌마을에서 운영한다. 숙박료는 1박 2만5천 원 선이었다. 특히 강정 해안가의 썩은 섬(서건도)에 대한 유래와 실제 섬의 토질이 썩은 흙 같다는 점도 흥미를 더한다. 모슬포에서 한림 쪽으로 가다 보면 신도리 해안가를 지나 제주시 고산면에 닿는다. 차귀도로 알려진 곳이다. 차귀도와 와도가 바라보이는 수월봉 쪽에 수십억 년 전의 기억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생의 다양한 지층의 속살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져있다. 정말 비경이 아니라 할 수 없다.
[#4] 차귀도 해변가
또한 한림읍의 금능 해안가에는 9월 중순인데도 해수욕장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비양도가 마주한 바닷가에 뒤늦게 몰려와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부터 마치 세 떼처럼 하늘을 나르고 있는 모습이 시선을 잡아끈다. 페러세일링을 즐기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광경이 눈에 선하다.
[#5] 페러세일링을 즐기는 사람들
환상의 섬 제주는 우리에게 가깝고도 잘 모르는 곳이다. 관광도 좋고 힐링도 권장해야할 일이지만, 언어, 생활, 풍습 등 문화인류학적으로 연구해야 할 부분이 무궁무진한 제주도다. 매력덩어리의 섬, 더욱 가까이 하고픈 제주도다. 언제나 그립고 갔다 오면 더욱 추억 가득한 제주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