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준 방송작가]
[정치닷컴/휴먼리더스=편집국/글 임성준]
미투운동은 미국의 한 영화제작자의 성폭력 행위를 비난하기 위한 소셜 미디어의 해시태그 (#MeToo) 달기로부터 시작되었다. 현직 여검사의 내부 고발로 시작된 우리나라에서는 법조계, 경찰계, 교육계, 언론계, 문화계, 종교계, 정치계 등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가족 내부에서조차 여동생이 친오빠를 고소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사회에서 미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은 없는 듯하다. 미투 운동이 폭력적 지배구조에 길들여진 남성 위주의 가치관에 일대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범죄행위가 한둘이랴 마는, 유독 미투의 문제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언제나 그래왔다. 성 스캔들의 대상이 되는 것만큼 인간의 수치심을 극단까지 몰고 가는 경우는 없다. 사람들은 대중 앞에 발가벗겨진 인간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려고 한다.
미투라는 단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일부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군중들은 스스로 판관이 되어 정의의 칼에 피를 머금을 각오로 다음 대상을 찾아 나선다. 우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한 사람의 배우가 세상을 스스로 마감했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도, 또 다수의 피해자들을 위해서도, 본인을 위해서도 최악의 선택을 했다. 모두의 마음에 상처만을 입힌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의 쓸쓸한 장례식의 이면에 무엇이 있었을까. 그의 죽음을 두고도 네티즌들은 호락호락하게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마저 금기시했다. 그가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만, 그의 삶 전체를 부정하는 태도마저 과연 온당하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그의 인생은 누군가에게는 좋은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고, 어떤 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권위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폭력으로 무고한 많은 여성들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힌 사람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죽음으로 몰아간 천인공노할 범죄자들도 버젓이 살아 숨 쉬는 세상임을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모 정치인의 비서관이 한 방송에 나와서 본인이 당한 성폭행에 대하여 오랜 시간 인터뷰를 하고 나서, 그 정치인은 스스로 정치 생명의 종료를 선언하고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오히려 당사자들보다도 더 큰 입장 차이로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진실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그로 인해 잠재적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욱 힘든 시간을 겪고 있으리라. 만약 법이 그 정치인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다면 그는 무엇을 얼마나 되돌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 미투의 부작용, 잠재적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법이 비서관의 뜻대로 판결이 난다면, 이에 대한 책임 또한 누구의 몫인가.
이런저런 우려와는 별도로 미투 운동은 이 땅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누군가는 본인의 과거 행적에 대한 폭로가 두려워 불안에 떨며 피가 마르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고, 또 누군가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끔찍한 기억 속으로 돌아가 갈등과 방황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진 고유의 입장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그래서 진실을 가리기 위해 법적인 절차가 요구된다.
현재 미투로 인한 많은 폭로들이 그 과정 중에 있다. 이쯤에서 대중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과연 올바른 판단을 할 자신이 있는가. 당신의 판단을 진실로 믿는 것도 자유고 그로 인해 분노하는 것 또한 자유지만, 그것으로 잠재적 가해자 혹은 피해자를 향해 돌을 던질 권리가 있는가. 만천하에 알몸으로 내동댕이쳐졌지만 아직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은 당사자들에게 온갖 압박을 가하며 칼춤을 추어대는 당신들의 행위는 과연 정당한가. 그것이 미투 본연의 목적에 어떤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보는가.
잠재적 가해자나 피해자의 입장 쪽으로 접근하지 말자. 당사자들의 가족이나 측근들, 그 상황과 직접, 간접적으로 연관을 맺은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성을 잃고 날뛰는 것은 하등의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진실과는 별개의 부작용만 양산할 뿐이다. 폭력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더 큰 폭력을 저지르는 모순에 빠져서는 안 된다. 미투의 본질은 폭력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미투는 국민들의 분노를 배설시키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운동이 아니다. 가해 당사자들을 색출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통하여 피해자들이 입은 고통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모든 이들의 경각심을 한 단계 끌어올려 보다 성숙된 인격을 요구하는 사회로 진일보하게 하기 위한, 힘들지만 모두가 견뎌내야 할 바람직한 진통의 시간들로 채워져야 한다.
미투 운동의 과정에서 가해자로 지목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를 맹비난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당사자의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특히 가족들에게 그 화살을 돌리는 것은 결코 안 될 일이다. 신상 공개만으로 가장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미투가 특정 세력을 음해하기 위한 도구로 쓰여서도 안 된다. 개인 간의 문제로 발생하는 성 범죄로 인해 그가 속한 집단의 도덕성 자체가 훼손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미투의 부정적 여파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앞 다투어 폭로성 보도에 열을 올리는 언론사의 태도도 재고되어야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의심 없이 믿어버리는 대중들도 문제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논리로부터 최대한 멀리 벗어나서 진행되는 상황을 냉정한 태도로 지켜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중들의 판단이 개입되면 될수록 미투에 의한 2차 피해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잠재적 가해자 집단인 남자들의 일부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이다. 어느 나라의 정치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여자 배제’ 운동이다.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아내 이외의 여성과 함께 있을 기회를 원천봉쇄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부화뇌동하는 남성들에게 되묻고 싶다. 과연 그러한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가.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여성 직원을 채용하지 않고 주요 업무에서 배제시키는 등 오히려 또 다른 차별을 낳고 있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지 말아야겠다는 마음가짐 따위는 애초에 관심도 없다는 얘기다.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당장의 가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는 없다. 마음의 동요를 의지로 다스리고, 스스로 자기 안을 들여다보며 경계하고 단속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바라보는 미투 운동은 투미(To Me)로 귀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투 운동은 시대의 소명이다. 남성 중심의 역사관이 빚은 그릇된 의식구조의 결과물이다. 오늘도 이 땅 위 어딘가에서 제2, 제3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을 것이다. 성범죄의 피해자가 입은 상처는 약을 발라서 낳을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그로 인해 송두리째 인생의 꿈을 짓밟히고, 누군가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한 정신으로 남은 날들을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일말의 뉘우침도 없이 또 다른 피해자를 향해 야수의 발톱을 드러내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세상을 활보한다.
내가 미투 운동을 접하며 처음 갖게 된 생각은, ‘나는 과연 미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인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었다. 미투에 의한 고발의 실체는 ‘폭력’이다. 나는 폭력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사람인가. 나는 누군가에게 일말의 폭력도 행사한 바가 없는가. 나는 살면서 단 한 명의 여성에게도, 아무리 가벼운 성적 접촉이라도 일방적이거나 강압적으로 시도한 적이 없었는가. 그런 일이 있었다면 혹 그로 인해 상대방은 조금이라도 마음의 상처를 입지는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멀쩡하게 당당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타깝게도 나 또한 100% 확신이 없다. 내가 살면서 무심코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와 용서를 구한다.
미투 운동은 결국, 모든 남성들이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자성의 계기로 삼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모든 지배적 권위에 의한 성적인 폭력행위를 저지르지 않도록, 잠재적 가해의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미투 운동은 결국 남성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투 미(To Me)’의 관점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아울러, 모든 폭력은 어떠한 경우라도 ‘정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투 운동이 그 원하는 바를 실천해가는 과정에서 그 의의가 훼손되지 않도록, 폭력적인 방식의 접근을 자제해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모든 이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한 네티즌의 말을 마지막으로 전한다.
"미투가 사람을 죽인 게 아니고, 밝혀지면 죽을 만큼 창피한 게 성폭력임을 깨달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