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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탐방] 나무에 幸福을 새기다 -서각-
[공방탐방] 나무에 幸福을 새기다 -서각-
[김병찬 서각 작가] [정치닷컴=황규형] 어릴 적 유난히 나무로 만드는 걸 좋아했고, 사랑방에 소죽을 끓이면서 부지깽이에 묻은 검은 숯으로 합판에 동물들도 그려보고, 나무에 칼로 글을 새겨보기도 하면서 유년시절을 보낸 기억이 납니다. 장교로 20년 군복무를 마치고 轉職후 여가시간을 이용 우연히 찾게 된 서각공방(書刻工房)이 저와 書刻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서각(書刻)이란? 글, 그림, 시화, 서화 등을 나무에 새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각의 역사는 인류의 문명과도 같이합니다.의사전달수단으로 사용했던 문자나 글 등을 바위, 나무 등에 새겨 서로 소통을 하고 후세에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고려시대 현존하는 최고의 목판 「팔만대장경」은 우리가 내놓을만한 최고가치의 서각예술 작품입니다.팔만대장경 인출을 위해 반서각(글을 반대로 새김) 형태로 산벗나무 등에 새긴 목판인쇄술입니다. 우리선조들의 뛰어난 창의력과 앞선 문화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 외에도 궁궐, 사찰 등의 각종 현판, 주련 등도 서각작품입니다. 최근의 서각은 전통서각과는 달리 채색을 다양화하여 화려함과 문자의 조형성을 강조하는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서각을 배우고 이 좋은 취미를 일반대중과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여 2011년 가을 대전시 괴정동에서 서각회 를 두 명이 창설하여 더 크고 안락한 작업공간을 위해, 유성구 구암동 비닐하우스에 공방을 만들어 이전 후부터 「울림서각회」로 명칭을 변경하며 본격적 홍보와 회원을 모집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매년 대전 시청전시회(2013~2017년), 지상군페스티벌 서각 체험장운영(2014년) 서울양재동AT센터전시(2014년), 서각진흥협회 대전광역시지회 가입(2014년), 한옥건축박람회(2016년), 육군훈련소전시회(2017년)등 다양한 행사와 활동으로 현재 공방회원 30명, 카페회원 700명 밴드회원 590명 등 서각을 취미로 하는 일반인들이 점점 증가 추세이며 중부권에서는 가장 크고 많은 회원의 동호회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書刻이 준 幸福 첫째, 書刻을 통해 행복을 창조하다.서각은 칼과 망치로 나무에 글, 문자, 그림 등을 새기는 예술로서 칼끝에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됩니다.따라서 작품에 몰입하다보면 모든 번뇌, 잡념 등이 사라지고 망치가 칼을 치고 칼이 나무를 새김질하는 과정에서 우울증, 심리적 불안, 산만한 행동 등이 힐링과 치유의 취미이기도 하고, 손으로 하는 취미라 치매예방에도 좋습니다.작품의 과정과 완성 후의 만족감은 그 어떤 취미보다도 큰 행복감을 줍니다. 일자일념(日字一念)으로 한자 한자를 새기다 보면 2~3시간이 훌쩍 지나가기도 하는 집중력향상에 좋은 취미 활동입니다. 둘째, 남녀노소 누구나 예술성이 없어도 6개월만 배우면 쉽게 할 수 있는 대중적 예술입니다.우리 공방에는 퇴직한분들, 고등학생, 여성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처음에는 이런 것을 남자들이나 하는 것이다. 힘들어 할 수 있을까요? 했던 분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르침 없이도 너무도 잘하고 즐거워하십니다. 퇴직자분들은 매일 공방에 출근하고, 직장인들은 주말에 공방에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합니다.이렇듯 서각예술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적 예술의 한 분야입니다. 셋째, 함께하는 즐거움(同樂)혼자가면 빨리 갈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행복하게 갈 수 있다는 말이 있지요. 서각은 같은 공간(공방)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하면서 즐거움이 배가 되고 삶의 행복이 느껴지는 취미입니다. 난로 불에 고구마도 구워먹고 부침개에 막걸리도 같이하면서 다양한 계층의 분들과 대화하며 삶의 지혜도, 고민도 나누며 함께 즐거운 행복소통 공간이 됩니다. 또한 작품구상에서부터 작품의 완성단계까지 토의하고 고민하는 그 과정이 너무도 즐겁고 행복하다고 합니다.어떤 고등학생은 집단따돌림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놀다 서각을 알게 되어 엄마와 함께 배웠던 학생이 1년간 몰입하여 배우면서 마음의 평정과 정신적 안정을 얻어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는 즐거움이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넷째, 나무의 향기(香氣)에 취하다.서각을 할 수 있는 나무는 모든 나무가 다 가능 합니다주로 사용하는 나무는 느티나무, 참죽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입니다. 특히 참죽나무와 소나무 향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입니다.그 어떤 비싼 향수와도 바꿀 수 없는 천연향이지요.공방에 들어설 때 확 다가오는 나무향기, 작품을 하는 과정 내내 그 향기를 맡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입니다.그 어떤 취미가 이런 천연향을 맡을 수 있을까요?나무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 했습니다.(木香萬里) 다섯째, 나무에 감성을 새겨 생명을 불어넣다.버려진 나무에 장인의 혼이 새겨져 그 나무의 생명력이 살아있는 것이 서각예술입니다.보통 글자 한 장에 4백번의 칼과 망치질이 있어야 작품이 완성됩니다.즉 보통 4~8자의 작품은 바탕작업까지 만 번의 칼질과 망치질이 있어야 작품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즉 고도의 집중과 몰입이 있어야 하고 그 몰입을 예술혼으로 발전시켜 나무에 감성이 전달되고 생명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는 겁니다.버려져 없어질 나무, 난방용으로 사용될 나무를 감성을 새겨 생명력있는 작품으로 탄생 하는 것을 보며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지요. 여섯째, 퇴직 후 향기 나는 취미생활퇴직 후에는 여럿이 같이 할 수 있는 취미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취미 한 가지는 있어야 한다고들 합니다.서각이야 말로 혼자서도, 함께 있어도 다 할 수 있는 취미입니다.그가 살아온 과정이 자식을 위해 살아 왔다면 이제는 자신의 삶을행복하게 디자인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즉 자기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데 투자하라는 것입니다.다양한 취미생활이 있지만 집중을 요하는 서각을 추천하고 싶습니다.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되면서 향기로운 노년의 삶이 인생을 더 가치 있게 할 것입니다. 작품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도 돕고, 좋은 글을 존경하는 분과 친구에게,자식에게의 선물,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2011년 서각회를 창설하여 서각전통계승과 서각의 대중화를 위해 뛰어 왔습니다. 이제는 서각이라는 단어가 많이 통용되어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 보람도 느끼지만 아직도 서각대중화의 갈 길은 멉니다.서각예술인들의 단결된 모습으로 명실 공히 서각이 예술의 한 장르로 많은 분들의 사랑을 더 받아야하고 누구나 쉽게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 확보 등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절실한 실정입니다. 아직도 열악한 환경인 하우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공공시설의 유휴공간을 지자체에서 지원하여 많은 분들이 서각을 통해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국민여가활성기본법」의 법적인 근거가 있으니 이제는 지자체에서 나서서 국민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취재 황규형]
[지독한 범죄]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 ㅡ권인숙 과 서지현
[지독한 범죄]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 ㅡ권인숙 과 서지현
[사진=mbc화면캪쳐] [정치닷컴=황규형 기자/글=김형민PD] 1986년 5월 인천 사태는 당시 운동권의 역량이 총집결해 벌인 시위였습니다. 하늘같던 공권력이 시위대에 밀리는 기현상까지 빚어졌지요. 이 상황은 고스란히 TV에 비춰졌습니다. 페퍼포그 차에 매달린 전경이 시위대에 각목으로 엉망으로 두들겨 맞는 모습은 9시 뉴스 내내 반복됐습니다. 당연하게도 정권은 ‘불순분자 일망타진’에 나섭니다. 경인가도에 늘어선 공장들에는 가짜 주민등록증 들고 ‘위장취업’한 이들이 곳곳에 박혀 있었고 경찰은 그들을 꼼꼼히 찾아내 수갑을 채우게 됩니다. 그 와중에 한 여학생이 부천경찰서에 끌려왔죠. 권인숙. 여기서 그녀가 당한 일과 이후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읊어댈 이유는 없겠습니다. 그녀는 지옥을 경험했고 악마에게 상처받았습니다. 단어 자체도 떠올리기 싫은 ‘성고문’이었죠. 그런데 그녀가 이를 세상에 폭로하고자 했을 때 가장 격렬하게 반대했던 건 그녀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예 머리 싸매고 드러누웠고 언니는 끔찍한 피해를 당한 동생에게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네가 그것을 계속 문제로 삼고 나온다면 부모님이 아마 돌아가실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차라리 내가 너를 죽여 버리겠다." 권인숙의 기록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 아픈 대목 중의 하나였습니다. 오히려 성고문 폭로 내용을 읽을 때보다 더 참담했습니다. 아무리 정권이 두렵다고 해도, 전두환의 세상이 그렇게 무서웠다고 해도, 상상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치솟는 패악을 당한 가족에게 또 다른 가족이 저토록 극단적인 말까지 해야 했을까요? 그 이유는 정권에 대한 공포 때문만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차라리 물고문 전기고문을 폭로하고자 했다면 권인숙의 언니는 저렇게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의 공포는 정권 뿐 아니라 그들이 수십 년 살아 온 세상 그 자체로부터 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여자는 유리 같은 것이며 한 번 금가면 끝”이라는 통념이 지배적이던 시기, 집에 침입한 성폭행 범에게 변을 당해도 남편이 그를 사유로 이혼을 요구하는 바람에 가정이 파괴된다 해서 ‘가정파괴범’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사용되던 때였습니다. 당시 썬데이서울 류의 잡지에는 유명 연예인이나 저명인사들이 ‘어떻게 결혼에 골인했는가’에 대한 기사가 종종 실렸는데 놀랍게도 부인을 납치, 감금하여 “며칠 동안 사랑을 호소”해서 결혼했노라는 인터뷰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호소’했을지는 뻔 하겠지요. 권인숙의 부모와 언니는 그들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을 겁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 부모는 투사로서의 딸의 인생을 넘어서 여성으로서의 딸의 구만리 같은 여생이 망가지는 걸 두려워했을 겁니다. “왜 그 많은 여대생 중에 걔만 당했대?” 하는 쑥덕거림이 일찌감치 귓전을 때렸을 것이고 “당한 건 그렇다 치고 어떻게 그걸 동네 사람들도 아니고 온 대한민국에 광고를 낼 수가 있어. 참 독하다.” 하는 수군거림이 천둥처럼 들렸겠고 “빨갱이 같은 애가 엄한 경찰 옭아매려고 저러는 거 아냐? 보통 여자가 저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 봐. 어디 입 끝 하나 벙긋 하겠어?” 하는 중얼거림이 번갯불처럼 온몸을 지져 댔겠죠. 그러나 1986년 7월 3일 권인숙은 그녀의 용기에 호응하여 달려온 변호사들과 함께 문귀동을 고발합니다. ‘성고문’이라는 끔찍한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죠. 처음에는 검사들이 의욕을 과시합니다. 권력의 핵심에 가 있는 선배들에게 연락해 이건 한 번 해 보겠다고 기염을 토했고 법무부장관도 그렇게 지시를 내립니다만 ‘관계기관대책회의’가 모든 판을 뒤집어 놓습니다. 기껏 써 놓은 수사 보고서는 휴지조각이 됐고 ‘성고문’은 ‘성모욕’으로 바꾸고 운동권 학생들이 ‘성(性)을 혁명의 도구화’하고 있으며 저 문귀동이라는 악마는 성고문은 커녕 “티셔츠를 입은 가슴을 몇 차례 쥐어박은 사실이 있을 뿐”이라고 검찰청 뜰을 오가는 도둑고양이도 낄낄댈만한 거짓말을 늘어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10년 이상 경찰에 봉직하여 성실하게 근무하여 왔을 뿐 아니라 자신의 과오를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을 들어 문귀동을 ‘기소유예’한다고 선언합니다. 검사가 기르던 애완견이 그 허벅지를 물고 “이 개 새끼야.” 부르짖을 판이었지만 이에 가장 절망한 사람은 권인숙이 아니라 오히려 권인숙의 가족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될 줄 뻔히 알았는데......” 참 대한민국은 잔인하고 뻔뻔했습니다. 보도지침이라는 독침에 꿰뚫려 있던 언론은 정권의 발표를 받아쓰기할 뿐 아니라 두어 수를 더 뜹니다. 1986년 7월 18일 경향신문 사설은 그 하이라이트라 할 만합니다. “첫째로 피의자 인권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피의자와 경찰의 문제에 개입하려는 정치 세력들의 의도는 반정부 반 공권력을 유지하려는 저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둘째로 피의자와 그 주변 반체제 세력의 의식화 문제이다. 검찰 발표에서도 드러난 바와 같이 이들 세력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획책하고 있다. 혁명을 위해 성을 도구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격 세력의 이와 같은 전략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세간의 비난을 유도하여 공권력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데 있다. 셋째로 부분을 통해 전체를 매도하는 일반적 의식 성향에 대한 경계이다. 어떤 한 조직의 구성원이 비리를 저질렀을 경우 그 조직 전체를 성토의 대상으로 삼은 시류가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이번 사건만 해도 한 수사 경찰관의 과격한 취조 태도가 사건화된 것이지 경찰 공권력 전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결국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입니다. 첫째, 이 사건을 이용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 둘째 이 사건을 어떤 의도를 충족시키려는 도구로 사용한다. 셋째, 그런 일이 있었다 해도 개인의 문제지 조직의 문제로 확대시켜서는 안 된다. 여기에 검찰이 문귀동을 기소유예한 논리를 덧붙여 보면, 넷째 ‘문귀동은 성고문 문제를 일으키긴 했으나 유능하고 성실한 경찰이었다.’가 될 겁니다. [사진=jtbc화면캪쳐] 그로부터 32년, 한 세대가 흘렀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웬만큼 마르고 닳을 만큼 시간이 간 2018년 벽두에 우리는 어디 운동권 학생도 아니고 현역 검사를 선배 검사가 성추행한 사건, 그리고 그 외에 잡다하고도 쳐다보기도 싫은 사건들의 폭로 릴레이를 접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제 검찰 내에서 일하시기가 좀 힘드시겠네요..이런 말 자체가 말도 안 되지만"이라고 안타까워하던 손석희 JTBC 사장의 실언에 가까운 우려가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1986년 경향신문의 사설의 그림자가 먹지를 대고 그린 듯 똑같이 재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거나 부장검사라는 작자가 폭로 앞에서 ”피해를 당했으니 서울로 발령 내 달라, 대검 보내 달라, 법무부 보내달라는 등의 요구를 하신다면 그런 요구는 도와드릴 수 없음을 깊이 양해 바랍니다.“라면서 피해자가 ‘성을 출세 도구화’한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것이나 “안태근 국장이 일 하나는 잘했다.”는 소리가 부끄럼 없이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부모님은 주변에서 소문난 부부 금슬로 유명했고 딸을 깊이 사랑한 분들이셨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서지현 검사의 글을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님들이 여직 생존해 계셔서 서지현 검사가 선후배 동료검사들의 성추행 퍼레이드를 폭로하겠다고 선언했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요. 과연 32년 전 위장취업자 권인숙의 가족과는 다를 수 있었을까요. 달랐다면 얼마나 달랐을까요. 과연 그 차이를 우리는, 우리 사회는 자신할 수 있을까요. 1986년의 여대생 권인숙이 2018년 법무부 성범죄 대책위원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권인숙 위원장의 가슴 속에서는 몇 년 전 히트를 쳤던 드라마 <시그널>의 한 장면이 재연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986년의 여대생 권인숙이 2018년 법무부 성범죄 대책위원장에게 묻는 거지요. “거기도 그럽니까?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한테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저걸로 뭘 얻으려 한다고 쑥덕거리고 나쁜 사람 만들고, 정작 가해자들은 기억에 없고 그저 몇 번 툭툭 친 거뿐이고, 지금까지 성실히 업무에 임해 온 사람이니 용서되는 그런 세상인가요? 그래도 30년이 넘게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그죠?” 권인숙 위원장이 32년 전 법정에 섰을 때 고 조영래 변호사가 온몸을 짜내 쓰고 읽었던 변론의 일부를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32년 전의 자신에게 읊어 주고 대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경찰과 검찰과 사법부 그리고 언론에 대하여 말한 것은 우리 국가와 사회가 권양에게 가한 온갖 부도덕하고 비열한 박해와 일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우리가 봉착하고 있는 전반적인 도덕적 위기의 한 징후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본 변호인단은 확신하거니와 이 도덕적 위기야말로 그 어떤 군사적, 정치적 혹은 사회 경제적 위기보다도 앞서는 우리 국가와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위기인 것이며, 이것이 정당하게 극복되지 아니하는 한 우리들과 우리 자녀들의 앞날은 실로 암담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드라마 <시그널>에서 현재의 형사가 과거의 형사에게 했던 대사처럼 이렇게 덧붙였으면 좋겠습니다. “바뀔 수 있습니다 .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
현실의 벽은 높지만 지방분권의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현실의 벽은 높지만 지방분권의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정치닷컴=황규형] 여기저기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초선의원으로 지방의회 4년을 보내고 새로운 4년을 준비 중인 서미경 대전 대덕구의원(더불어 민주당 비례대표)을 만나 지난 의정 활동에 대하여 들어 봤다. 지방 의정에 첫 발을 디딘 초선의원(비례대표)으로서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서 의원은 지난 4년간 대전 대덕구의회(비례대표)의원 으로 활동하면서 그것도 지역구가 아닌 정당 비례대표 의원이라는 맹점도 있었지만 활발하게 지역구 현안에 대하여 주민과 대화하며 고민하는 생활 밀착형 의정활동을 하는 의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초선의원이 생각했던 지방의회 의정활동 4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안녕하세요, 서 의원님? 네~ 안녕하세요. 늦었지만 먼저 주민들에게 인사를 드린다면 .. 안녕하세요? 서미경 의원입니다. 지난4년 동안 저에게 보내주신 사랑과 묵묵히 지켜 봐 주시고 용기를 주셨던 주민 여러분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그것도 여성의원(비례대표)으로써 이제 4년여의 의정활동을 무사히 마치게 되는 것은 저를 믿어주고 지켜 봐주신 주민 여러분의 큰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무술년 새해에는 대덕구민 모두가 화합하는 가운데 더욱 더 건강하시고 집집마다 행복이 넘치는 한해가 되길 소원합니다. Q. 4년의 의정활동을 한마디로 표현 한다면...? A. 늘 긴장되는 날이었다. 왜냐고 묻는다면 저 자신이 정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의원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지역구가 아닌 정당 비례대표로 그러다 보니 지역구이신 3선, 4선 의원님들과 생활하다보니 긴장이 될 수 밖에 없었지요. 의정 활동에 대하여 누가 알려 주는 것도 아니고, 학교 다닐 때 보다 더 많이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서야 의정활동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그동안 어떤 활동을 펼치셨다고 생각하시나요? A. 처음 제 스스로 자신하고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4년간 운동화만 신겠다고“ 정말 그렇게 했습니다. 기초의원이 할 수 있는 것은 국회의원이나 광역 시의원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지역주민의 불편사항이 없는가, 내가 발로 직접 뛰고 알아보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역 주민과 골목 상인들 그리고 경로당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 잘 듣고 메모하며 지역을 다니면서 민원 받고, 그날그날 받은 사항은 바로 의회로 와서 담당공무원과 상의 하여 해결 해 드리는 것 그것이 제가 의원 생활을 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의정생활은 주민 생활밀착형 의정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 했다고 생각합니다. Q. 지방의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먼저 의원의 역할은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특권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방자치의정(행정)에 대해 주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행정서비스의 향상을 통한 주민들의 복지를 개선하는 것으로 지방의회가 경쟁력을 가지고 주민들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먼저 의원 각자 각자가 특권을 내려놓고 주민들에게 신뢰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집행기관에 대한 견제 및 감시가 필수적이며, 여・야의 파벌 논쟁이 아닌 주민을 위한 것이라면 화합으로 지역발전과 구민불편해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의원이며,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 바로 지방의회라고 생각합니다. 의원은 주민이 뽑아준 직책이니까요. Q.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A. 고맙습니다. 제가 있는 대덕구는 대전의 5개 구청 중 노인 인구가 가장 많은 곳입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노인 일자리 지원 확대 및 노인 여가복지 프로그램 확대 운영과 어르신들의 복지 수요에 부응하는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생활 지원을 위하여 노인 복지시설 확충과 노인 일자리사업 지원 확대, 여가복지 프로그램 확대 도입, 경로당 지원확대 및 운영개선을 위한 노인복지관을 통한 노인의 교양·취미생활 및 사회참여활동을 위한 각종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 일자리 창출, 재가복지 등, 노인여가 복지시설에 역점을 두고 그 방향의 지원정책에 대하여 연구하고 공부하고 싶습니다. Q. 끝으로 대덕구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2018년은 이제 대덕구민 모두가 “어려움을 극복하며 ‘구민의 안녕과 지역발전’, ‘희망대덕 건설’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봅니다. 지방자치는 주민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민과 의회가 그리고 행정이 서로 화합하고 고통을 함께 할 때 지방자치의 발전과 분권은 이루어 질 것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