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명(墓誌銘)이란 피장자의 신분과 살아생전 행적을 기록한 금석문으로서, 우리나라의 묘지명은 고려시대 귀화 중국인들에 의해 보편화되기 시작하여 11세기 이후 장례 문화로 정착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의 묘지명은 오늘날 350여 점이 전해지고 있는데, 종실과 문무양반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당시 묘지명 문화가 소수의 중앙 귀족들에 의해 향유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런 점에서 「김지원 녀 김씨 묘지명」은 아주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개성에서 출토된 이 묘지명에는 '낙랑김씨녀 부호장지원(樂浪金氏女 父戶長智源)'이라는 10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여기서 낙랑은 고려시대 경주의 별호이며, 호장은 향리의 으뜸으로, 이를 통해 묘지명의 주인공 김씨가 경주 향리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전하는 고려시대의 묘지명들 가운데 지방 향리의 것으로는 「김지원 녀 김씨 묘지명」이 유일하다.
김씨의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남편의 이름 대신 김지원의 딸로 기록되어 있어 그녀가 시집가기 전 어린 나이에 요절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향 경주가 아닌 개성에 장사지낸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 상경하였다가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였던 것 같다. 김지원은 꽃다운 나이에 너무나도 일찍 세상을 떠난 딸을 그리워하며 아름다운 꽃 모양의 묘지명을 만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