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한국의 특권층, 왜?

기사입력 2018.04.1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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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닷컴/휴먼리더스=조종건 논설기자]


셰익스피어의『맥베스』를 읽어보면, 인간의 권력 욕망이 자신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오는 장면이 나온다. 맥베스는 군인에서 장군으로, 장군에서 왕이 될 것이라는 세 마녀의 예언을 듣고 합리의 이성을 포기한다. 부인은 맥베스의 타오르는 권력욕을 부채질했고, 그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던컨 왕을 살해하고 왕권을 쥔다. 그의 통찰력은 권력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시야로 좁혀졌다. 그러나 그의 말로는 권력의 모래성이었고 비참한 죽음이었다.

 

요즘 대통령을 포함한 특권층의 말로가 모래성임을 보자. 박근혜는 2017년 3월에 구속, 이명박은 2018년 3월에 구속의 위기를 맞고 있다. 권력형 비리로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등 권력실세들이 구속됐고, 롯데그룹 회장 신동빈이 구속됐고, 삼성그룹 부회장 이재용이 구속된 적이 있다. 이미 감찰의 칼끝은 이명박에게 향했다. 그의 참모들은 줄줄이 구속된 상태고, 이명박은 뇌물, 횡령, 조세포탈 등 범죄혐의가 20여 개에 이른다. 현재까지 드러난 110억 원대의 뇌물수수, 350억 원대 횡령 등의 혐의로 3월 14일 검찰조사를 받았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사람이 정말 이명박인가. 아니면 그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오천 만 국민을 속인 것인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꿈같은 이야기에 놀라면서 권력의 모래성을 실감한다.

 

5년 전, 법의 보호막을 친 특권층의 약탈을 보자. 30여 년간 공직생활을 하고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상류사회의 자녀가 대학 재학 중 가계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5차례나 받았다. 당시 윤병세 외교부장관 후보자의 딸이었다. 또 사회약자에게 주는 입학 자리를 특권층이 가로챈 사건이 있다. 2013년 2월 28일자 신문에 영훈국제중학교 입학사건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A양 아버지는 연매출 500억 원대 중소기업 대표, B양 아버지는 강남의 한 성형외과 유명의사, 법무법인 대표출신 변호사, 서울 강남의 빌딩 임대업자 자녀들이 우리 사회의 진정한 약자일까? 심지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들마저 사회배려 대상으로 입학했다. 

 

특권층이 정부정책의 온갖 특혜로 인해 수 십 조원씩 합법에 의한 약탈도 부족해, 자신은 물론 자식도 군 면제, 세금조작, 재산해외도피, 노란자위 땅을 쥔 특권층의 부동산 투기 광풍조차 이들의 자연스런 일과가 된 세상이다. 판검사들이 법의 엄격한 잣대를 소홀히 한 채 특권층이나 비호하니 국민의 삶은 파탄난 것이다.

 

강원 랜드 채용비리와 같이, 표면에는 공정한 경쟁을 내세우지만 이면에는 특권층의 온갖 추태로 얼룩진 것이 한국사회 곳곳에 만연돼 있다. 최근 권력에 의한 성폭력이나 국민세금을 전리품으로 여기는 특권층의 추태는 빙산의 일각이다. 특권층이 공권력마저 사익추구의 도구로 여길 정도니 숨 막히는 사회 아닌가. 국민은 그 권력을 공정한 사회 만들라고 위임한 것인데 자신과 가신들을 위한 특혜 사회를 만들고도 뻔뻔스런 모습을 보니 하이에나인지 인간인지 혼란스럽다. 

 

국회의원 최저임금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의 열기는 이런 독버섯 같은 파렴치한들 때문 아닌가. 그레샴의 법칙처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선량했던 시민마저 이런 추태를 따라하고 있다. 타인은 제외의 대상이며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급증한 후, 한국은 정글보다 더 심한 강자 독식 사회가 돼 버렸다. 썩지 않은 사회분야가 있을까. 누구의 말이 진짜인지, 누구의 글이 사실인지 헷갈리는 사회가 되었다. 

 

결국 1% 특권층의 오만과 탐욕의 전염성이 한국을 절벽사회로 만든 셈이다.

 

오늘날 우당 이회영과 같은 독립 운동가를 찾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다. 조선 3대 부자였던 그와 다섯 형제들은 합의 후 집안재산을 팔아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독립군을 양성했으니 대단하고, 오늘날의 화폐가치로 600억 원이 넘는 액수라니 대단하다. 이회영은 인생 노년에 일주일에 두 끼 먹기가 힘들 정도로 3,000명의 독립군 양성에 일생을 바쳤으니 대단하고, 만삭인 부인을 조선 땅에 보내 독립군 자금을 모으게 한 것도, 또한 군자금을 위한 부인의 삯바느질도 대단하다. 

 

이회영 자신은 마지막 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상해에서 만주로 가다가 얄밉게도 조선인 친일스파이의 밀고로 뤼순감옥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혹독한 고문으로 순국한 것도 대단하고, 대통령 이승만이 해방 후 우당의 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시형 부통령에게 독립운동 때 사용한 돈과 집안 땅인 명동 땅을 찾아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그 모든 것을 국가에 기부했으니 이회영 집안 또한 대단치 않는가.

 

그 집안을 생각할 때마다 한국의 지도층이 약탈자의 모습으로 비치는 것은 필자의 착시일 수 없다. 이회영과 같은 이를 찾기가 어렵다면, 한국은 자정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서글픈 나라 만들려고 평생을 개고생하며 독립운동을 했느냐고 하늘나라에서 탄식하는 이회영의 거룩한 분노를 오늘의 리더들은 읽을 수 있을까. 

 

역대 대통령과 가신들, 법조계의 검은 거래야말로 한국을 약탈사회로 만든 중핵이라는 것을 국민은 알고 있다. 요즘 분출하는 국민의 열기는 법원의 개혁, 검찰의 개혁이며 법조계의 개혁실천이야말로 독립 운동가들에게 빚진 최소한의 도리다.

 

이젠 해맑은 청소년조차 법의 엄격성을 지키지 못한 판검사들을 원망하고 있다. 피자 한 판이 있다고 하자. 백 명이 먹을 수 있는 초대형 피자다. 먼저 가져가는 자가 자르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일 그가 99%를 가져가면, 나머지 아흔 아홉 명은 1%의 피자를 나눠야 하다. 이처럼 한국은 1%의 특권층과 99%의 노예계층으로 변했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분노의 열기가 식지 않는다. 판검사들이 법의 엄격한 잣대를 사용했더라면 이런 약탈 사회는 막지 않았을까,

 

더 이상 강자만 사는 약탈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약탈사회를 막아야 한다. 독립운동가 이회영처럼 말이다.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으로 그 시대의 약탈사회를 온 몸으로 막았다. 프랑스어의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란 “고귀한 신분에 따른 의무,” “귀족의 의무”를 뜻한다. 그는 한평생 특권층의 의무를 다했기에 그는 우리 시대의 멘토요 사표가 된 것이다. 우리 후손에게 줄 시대정신(Zeitgeist)은 그의 핵심가치인 노블레스 오블리제일 것이다.

 

타이타닉 침몰과정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특권층의 단면은 이회영의 가치와 결이 같다. 106년 전 타이타닉호 침몰사건 과정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준 것은 상류층의 의무다.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5분에 바다에 떠 있는 초호화판 호텔과 같은 그 배는 빙산에 부딪쳐 새벽 2시 22분에 가라앉고 말았다. 당시 배 안에 구명보트는 절반가량의 탑승자만 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누구를 구명보트에 태워야 할까. 권력이 높은 사람일 수 있고, 돈이 많은 사람일 수 있고, 힘이 센 장정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결정한 탑승의 우선순위는 이들이 아니었고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이었다. 물론 약삭빠른 남자도 있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사회 약자를 보호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이들 중 깊은 감동을 준 네 가지 사례는 특권층의 의무를 잘 설명한다. 

 

먼저, 일등 항해사 머독(William Murdoch)이다. 그는 위기의 순간에 풀리지 않는 구명보트를 애써 풀어 생명을 살리고, 자신의 구명조끼는 남에게 주고 죽음을 기꺼이 선택한다. 둘째, 철강으로 억만장자가 된 스위스 출신 벤자민 구겐하임(Benjamin Guggenheim)이다. 그는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알고 작심한 듯 턱시도로 갈아입고 배와 운명을 같이한다. 셋째, 하틀리(Wallace Hartley)가 이끄는 8인조 악단은 그 위기 순간에 죽음으로 불안해하는 탑승자들을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음악을 연주했으니 인류의 심금을 울렸다. 그들 때문에 음악가에 대한 깊은 존경이 있는 것은 아닐까. 넷째, 스트라우스 부부다. 유명한 자선가요 뉴욕 맨해튼 메이시 백화점을 소유한 스트라우스(Straus)는 먼저 죽음을 받아들였고 그 부인은 구명보트 탑승 권유를 두 번이나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남편과 마지막 순간을 같이했다. 대신 하녀에게 그 자리를 양보했고 입고 있던 모피코트마저 건넸다는 것이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사회 약자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 자들의 아름다운 사건이다. 이러한 사회지도층의 모습을 보니 참으로 아름답고 부럽기도 하다. 

 

이와 같이 어떤 나라든 격조 있는 문화의 품격은 엘리트들의 자기희생 위에서 꽃피운다. 타이타닉호 침몰의 과정에서 특권층은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포기했기 때문에 품격 있는 미국문화를 만든 셈이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미국인들은 부유층에 대한 냉소가 한국보다 적은 듯하다. 

 

영국에서는 황실의 왕세자들이 먼저 가장 험한 전투현장에 간다는 것은 언론에 회자된 내용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도 그랬고 아르헨티나에 인접한 포클랜드 전쟁 때도 그랬다. 또 사소한 일이라도 공공의 일이라면, 특권층에게 특혜가 허용되지 않는다. 영국이나 이탈리아에서는 경찰이 수상 부인이라도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그의 신분을 알면서도 차를 세워 범칙금을 발부한다.


정리해 보자. 최근 화두인 특권층의 의무를 저버린 핵심 권력층의 말로가 모래성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다. 국민은 촛불시위에서 변화를 보았다. 검찰은 2018년 3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국민은 완전히 속았다. 위대한 대한의 아들딸들이여! 이젠 속지 말자. 

 

[조종건 논설기자 기자 infoj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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