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닷컴/휴먼티브이=이서원]문재인 대통령은 어제(9일) 진행된 취임 2주년 기념 대담에서 “(친재벌·반재벌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대기업 오너가 회사에 대해 횡령과 배임을 저지르고도 경영권을 가지는 것을 못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사진=채이배 의원]
대통령이 언급한 시행령 개정은 채이배 의원이 법제사법위원회에 보임한 작년 8월부터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문제이며, 지난 7일부터 개정령이 시행되었다. 개정된 시행령은 경제범죄자 취업제한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며, 가장 쉬운 부분만 임시로 조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어제 대통령의 언급처럼 횡령·배임으로 유죄판결을 받으면 경영에서 배제되는 제도를 정부가 이번에 만든 것이 아니다. 고액경제범죄자에 대한 취업제한 제도는 80년대부터 법적 근거가 있었고, 그 동안 정부가 할 수 있었음에도 집행을 하지 않아 사문화시켰던 것이다. 공정경제를 전면에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가 취임 2년이 되도록 이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가 이제야 시행하려는 것을 반성해야 마땅하지, 성과로 내세울 사안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내용 면에서도 현행 특경가법(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범죄자 본인이 아니라 공범을 중심으로 제도가 설계되었다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때문에 동일한 범죄를 저질러도 공범유무에 따라 취업제한 범위가 크게 달라지고, 취업제한의 범위는 오히려 경제범죄를 주도하는 재벌총수에게 유리하다. 뿐만 아니라 취업제한 대상 회사를 단순히 출자단계로 제한하여, 경제적 실질과 법 제정 이후 달라진 경제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개정 시행령은 이러한 문제들을 모두 방치하고, 지난 국정감사에서 채이배 의원이 제도적 허점의 사례로 든 한 가지만 급히 수정한 졸속 개정령이다. 개정 시행령이 얼마나 졸속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취업제한 대상 기관의 목록만 봐도 알 수 있다. ‘국정교과서주식회사’와 같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 기관을 삭제하는 최소한의 개정조차 하지 않았다.
채 의원은 어제 대통령의 말씀처럼, 재벌개혁이 친재벌이냐 반재벌이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백번 동의한다. 재벌개혁은 재벌의 불법과 탈법을 근절하고 공정한 경제생태계를 조성하여 궁극적으로는 다함께 성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재벌의 불법·탈법행위는 우리 경제의 오랜 적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 출범 이후 2년간 재벌개혁의 성과는 미미하고, 적폐청산에 전념하는 정부에서 재벌만은 적폐의 예외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의심마저 들고 있다. 경제범죄자 취업제한 제도의 소관 부처인 법무부는 국회로부터 반복적으로 이에 대한 문제를 지적받아 왔다. 그럼에도 지금껏 제도개선과 시행 모두 외면하다가 이제야 제도 시행을 준비하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다. 재벌개혁에 앞장서겠다”는 대통령 취임사의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