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불양수(海不讓水) 그리고 소망 - 욕심이라는 삶의 무게에 눌리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마음먹고 바다를 본적이 몇 번이던가?

기사입력 2019.03.04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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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닷컴=김규남 논설위원]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의 해불양수(海不讓水). 춘추시대 제(齊) 나라에서 '포숙아(鮑叔牙)'의 도움으로 환공(桓公)의 승상까지 한 관중(管仲)'의 업적을 기록한 '관자(管子)', '형세 해(形勢 解)'편에서 유래하는 경구이다.

   

강원도 고성 출장 길 점심 차 들른 식당가에서 바다를 본다. 오늘따라 잔잔한 바다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아내와 함께 왔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바다와 멀리 떨어져 살아서인지 유난히 바다를 좋아하는 아내는 결혼 전 내 고향이 바닷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작정 결혼한 것은 아닐까? 언제인가는 결혼하면 바다를 자주 볼 줄 알았는데 도리어 결혼을 하고 바다에 갔던 기억이 손으로 꼽을 정도라던 투정이 갑자기 새롭게 들린다.

 

우리가 살면서 욕심이라는 삶의 무게에 눌리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마음먹고 바다를 본적이 몇 번이던가? 늘 바쁘다는 핑계로 바다는 고향 가는 길에 거쳐 가는 길목일 뿐 목적지가 될 수 없었다. 물론 결혼 전 자주 바다에 데려가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다 하지만 아내는 막연히 결혼하면 바다에 자주 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 더 미안해진다.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서 모두를 받아들이는 세상에서 가장 큰 그릇이다. 바다는 큰물이든 작은 물이든, 더럽든 깨끗하든, 뜨겁든 차든 그 어떤 물도 가리지 않고 그저 그렇게 포용한다. 하루하루 더 팍팍해져 가는 세상에서 오늘처럼 이라도 바다를 보며 바다를 닮고자 했다면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 하여, 바다를 닮아 조금만 더 낮아지고, 조금만 더 베풀었다면 우리의 삶은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우리들을 행복하게 하고자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던 정치인.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들이 과연 이념과 노선을 떠나 국가이익과 국민의 안위를 생각하는 정치를 하고 있는지 또한 해불양수(海不讓水)의 포용의 덕을 실천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제는 양보하고 포용하는 정치를 통해 다양한 성향의 국민들을 하나의 목표로 결집시키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또한 그 힘을 한 방향으로 지향시켜 시너지를 창출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과거에 함몰되는 정치보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언제나 넉넉히 모두를 받아들이는 바다를 닮은 어른스러운 정치를 보고 싶음은 우리 모두의 소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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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돌아보면 어쩌면 결혼 후 바다를 자주 볼 것이라는 아내의 기대를 저버린 미안한 마음으로 이번 주말에는 아내와 바다에 다녀와야겠다.

[김규남 논설위원 기자 infoj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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