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스토리] 제주 극락사 지운(志云)스님 , 인고의 시간을 담다

기사입력 2019.03.0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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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닷컴/휴먼리더스=장경욱 편집기자]

현승(賢僧)의 붓이 물과 같이 흐른다. 그리고 자애로운 모습을 묘사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은 구체화하고 형상을 띠어 마침내 달마(達磨)의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주변의 흐름에 따라 고승이 잠사나마 속세와 경계를 긋고 작품에 몰두한다. 지운(志云)의 화풍은 이렇게 시작된다.

지운스님.jpg

[사진=지운스님]

 

구도를 향한 쉼 없는 붓

그를 찾는 구도자들이 많기에 지운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다. 극락사의 그림에 나타난 붓의 시원한 획은 그의 가르침과 발걸음과 닮았다. 지운의 그림에는 거침과 부드러움, 그리고 뚜렷함이 있다. 획 속에 녹아든 삶의 교훈이 순간 속세를 잊게 한다. 또한 그림에 나타난 명확함과 여유로움은 그 때문일 수 있다.

 

속세에 머물되 이상을 담은 그림이 탄생하게 된 이유, 구도를 향한 붓의 움직임은 그렇게 현대인들에게 다가선다. 이미 속세와 연(緣)을 끊고 현재를 살기에 그의 그림은 미련 없이 떨어지는 폭포 소리 같다. 달리 보면 거침없는 물결 같이 가슴에 와 닿기도 한다.

 

선화(禪畵)가 삼독을 잡다

불교에서 일컫는 욕심과 화, 그리고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은 지운의 선화를 보며 수그러들게 된다. 욕심을 버리고 화를 누르고, 지혜를 찾아가는 길에 그의 가르침이 함께 한다. 지금껏 수많은 이가 제주 극락사의 그림을 그렸으며,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했다. 수행의 경지를 넘어서 결국 지혜와 진리를 얻었음에도 선화(禪畵)의 전승은 계속된다. 이 같은 이유로 지운 역시 멈추지 않고 속세를 향해 계속해서 현문(賢問)을 던진다.

지운.jpg

 

지운이 그린 용(龍)의 풍모는 달마거사와 닮았다. 같은 눈빛과 같은 풍채, 그 상징하는 바도 유사하다. 흰색의 화지(畵紙)에 획이 그려지고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되듯 지운의 손에게 시작한 작은 움직임은 결국, 깨달음을 향한다. 그 교훈에 조금이나마 다가설 수 있다면 그 시간은 결코 아깝지 않다. 달마의 꿈을 꾸며, 그 형상을 본이들은 절로 머리를 숙이게 된다. 이유야 다르겠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이 깊어서일 게다.

 

자연스레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진리

화폭을 앞에 두고 지운이 붓을 드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비록, 그의 그림은 길바닥에 있었지만, 무색(無色)의 화지에는 기다리던 그림이 눈앞에 펼쳐졌다. 경계를 넘어선 고승의 마음엔 이미 틀이 없고 얽매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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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지은 과오(過誤)를 부정하는 건 이기심의 발로(發露)”라 했던 지운은 여전히 그림을 보러온 이들에게 불교 공부를 권한다. 이 같은 방법으로 불심이 자신을 다잡고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는 진리를 자연스레 전한다. 여기에 그림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불교가 스스로를 닦는 공부라 여기는 지운은 수선(修善)의 과정을 매일 반복하며 그의 뜻이 그림에 배게 했다. 이런 이유로 달마를 보는 구도자들은 사색에 잠기게 된다.

[장경욱 편집기자 기자 infoj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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