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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닷컴=김규남]
누구에게나 유년의 기억은 아련할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시절, 등하교 길에서 만나던 외나무다리를 생각해보면 매번 건널 때마다 느끼던 긴장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여름철이야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 빠져도 그런대로 견딜 만하지만 추울 때에는 낭패라 더욱 조심조심 건넜던 기억이 난다.
돌아보면,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적절한 균형이 필요했던 것 같다. 사전적으로 ‘균형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를 말한다. 처음 두렵고 어렵지만 균형 잡던 노력과 시행착오를 통해 외나무다리를 건너던 기억과 노력이야말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현명한 사람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예기(禮記)』에 나오는 글로서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기보다 세상 모두를 공경하며, 상대에 대하여 사려 깊은 편안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 말의 속뜻은 한쪽에 치우치면 현명하지 못할 개연성이 있다는 말이다. 이는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하며 우유부단 하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서 극단적인 치우침을 경계하고 균형(均衡)과 조화(調和)를 이루라는 말일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욕구의 분출과 집단이기주의로 인한 극단적인 치우침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한 적은 없는지, 또한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나의 생각만을 강요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혹자는 우리 사는 세상의 모든 논쟁과 싸움은 서로 간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다름을 틀림으로 보는 것은 틀림이라는 틀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며 다름으로 볼 때에야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치우침을 인식 못하고 자기 의지만을 관철시키려는 것은 원치 않는 많은 부분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소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볼테르(Voltaire)는 나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논쟁이 길어질수록 그것은 쌍방 모두 틀렸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말과 행동이 서로에게 짐이 되기보다, 균형과 조화를 통한 힘이 될 수 있는 관계와 이의 실천을 위해 나를 먼저 내려놓는 상대에 대한 작은 배려(配慮)가 필요한 시간이다.
이제, 입춘이 지나서인지 매서운 한파도 한풀 누그러졌다. 셸리(P.B. Shelly)의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았다”던 ‘서풍에 부치는 노래“를 실감하는 이 시간, 세상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지난겨울, 국화차 한잔의 향기가 새로웠다. 말라죽은 줄 알았던 꽃봉오리가 따뜻한 물 한잔에 꽃을 피우고 그윽한 향기로 추운 겨울을 녹여주던 기억을 반추(反芻)하며 작은 소망을 담아 가을에 말려두었던 국화 한 송이를 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