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석 정성태” 묵향의 진정한 선을 담아내다!

기사입력 2018.06.1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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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닷컴=장경욱]


여유로운 운치 아래 시원한 기운을 더하듯 ‘인석 정성태’ 관장을 만나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진면목과 평소, 그의 예술에 대한 심안은 무엇일까 다소곳이 들어보고자 한다. 이런저런 전반적인 물음을 안고 폭넓은 일반 미술 애호가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본지 기자가 인사동 아늑한 정성태 관장의 화실을 찾았다.

 

 

평상시 겸손이 심미안을 밝히다

 

옛 명언에 보면 “부운부기오하모 누황단표분소감(浮雲富貴吾何慕陋巷簞瓢分所甘)”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인즉 ‘나는 뜬구름 같은 부귀와 영화를 내 어찌 사모하리요 비록 누추하고 가난한 화가일지라도 화선지 먹물을 묻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이라도 한 잔의 술을 벗 삼아 살아가는 화가가 나의 분수에 맞다.’는 의미이다.

크기변환_2001정성태_ 칠보산 심원폭포  165x130cm.jpg

 

세속에 길들여진 중생이야 부귀영화와 공명을 제일로 삼지만 어디 인생의 덧없음과 헛된 세상의 가치를 벗어난 예술인일진대 무엇으로 그 허한 마음을 달랠까. 이는 화선지에 번지는 허욕을 씻겨낸, 어둔 밤 한줄기 밝은 달빛에 서린 천년을 이겨낸 소나무의 지조일까 보다.

 

 

이는 너무나도 순수한 ‘인석 정성태’의 마음과 같은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때때로 인석 정성태 관장은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나 자신에 대한 심미안(審美眼)과 감시안이 공조(共助)하여 미감을 여러 예술인들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전달하지도 못한 채 희석(稀釋) 시켜버린 때도 사실은 많다.”고 회상한다.

 

 

슬픈 일로 망각한다는 것은 간혹 기쁘기도 하나 소중한 것을 간직하고픈 향수는 설령, 자신이 걸작이라 할 만한 작품도 뒤돌아보면 여운과 아쉬움이 남는다. 완전을 것을 표현하고 전달하려 하나 ‘인석’은 늘 자신의 의도만큼 상대를 충족히 소통시키지 못한 안쓰러움과 함께 이와 연관해 그의 내부에 겸손과 미덕이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무수한 광음 속에 참다운 인생의 그림자

 

크기변환_불멸의 꿈_157x63cm.jpg

한결같은 마음으로 붓을 들어 과거와 현재를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수용력과 함께 새로운 창작의 길을 개척한다는 것은 웬만히 내제된 지적수준과 예지력이 받쳐주지 않고선 좋은 작품을 기대할 수 없다.

 

 

현시대에 복잡다단한 사조의 기류를 나름의 의식구조와 미적 예술 감각을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로 끌어오지 않고선 묵향의 진정한 선을 담아내기 어렵다. 정성태 관장은 “지금도 나는 전통(傳統)의 회화정신을 아끼고 연구하면서 보수적인 체제의 환경을 이겨내며 어렵고 고달픈 창작의 작업을 실험 하고자 전통(傳統)과 현대회화(現代繪畫)를 접목(椄木)시켜 보려고 그래도 외롭고 고독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누군가의 열정을 태우지 않고선 감동을 더불어 느낄 수 없듯 알게 모르게 희생이 따르지 않은 결실의 소중함은 없다. 어선은 풍운에 연연해 대해를 떠도나 무수한 광음이 변해도 금강석처럼 투명하고 심지 곱은 예술혼은 창작의 화폭 위에 참다운 인생의 그림자를 남긴다. 

 

그저 소리 없이 묵향으로 ‘인석 정성태’는 세상을 그려내지만 그 안에는 희로애락이 점점이 녹아 언제라도 시공을 넘어 우리에게 삶의 여유와 안락한 쉼터를 안긴다. 

[장경욱 기자 infoj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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